2017년 11월 추운 겨울 아침, 백화점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긴 줄이 생겼다. 전날 저녁부터 줄을 선 사람도 있었다. 14만 9천 원짜리 검은색 긴 패딩을 사려는 사람들로 매장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3만 벌 한정판 평창 롱패딩 때문이었다. 이렇게 롱패딩은 2017년 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북극 생존의 시작 이누이트 파카
롱패딩의 기원을 찾아가려면 북극으로 가야 한다. 1929년 이누이트족이 입었던 방한복 파카가 바로 롱패딩의 원조다. 파카라는 단어는 네네츠어에서 왔다. 이누이트족은 사냥을 통해 얻은 순록이나 물개 가죽으로 파카를 만들었다. 두껍고 보온성이 뛰어났지만 무거웠다. 추운 북극에서 사냥과 카약을 타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그러다 1936년 미국의 에디 바우어가 현대적인 패딩을 만들어냈다. 무거운 털 대신 가벼운 소재를 개발했다. 활동성이 좋아졌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패딩의 시작이다. 하지만 아직 롱패딩은 아니었다. 스키 선수들이나 등산가들이 입는 전문 장비였을 뿐이다.

축구 벤치에서 탄생한 벤치 파카
1970년대 들어 롱패딩의 진짜 역사가 시작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면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패딩을 입고 있었다. 바로 벤치 파카다. 벤치라는 단어가 그 벤치 맞다. 축구 야구 등 실외 운동선수들이 벤치에 앉아 교체 대기하는 동안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덧입는 옷이었다. 얇은 유니폼 한 장으로는 추위를 이겨낼 수 없었다. 해외 축구 팬들에게는 아스날 감독 벵거가 롱패딩을 입고 지퍼가 안 올라가서 쩔쩔매는 장면이 유명했다. 1990년대부터 한국 프로야구팀도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벤치에서 롱패딩을 입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옷이었다. 21세기 들어 예능 프로에서 롱패딩 입은 연예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차 안내 요원, 대리 기사, 체육 교사들도 방한용으로 입기 시작했다.

2018 평창의 기적 등골브레이커의 탄생
대중적 유행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인 2017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아이돌과 연예인이 평창 롱패딩을 착용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당시 강한 한파가 닥치면서 더욱 퍼졌다. 롯데백화점이 평창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되면서 신성통상에 주문해 만든 것이다. 3만 벌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거위 솜털 80퍼센트 깃털 20퍼센트에 우모량 400그램으로 가성비가 괜찮았다. 한정판에다 평창 올림픽이 대놓고 그려지지 않은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기존 브랜드에서는 최소 20만 원 중후반대였는데 14만 9천 원에 나왔다. 초도 물량 2만 3천 벌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판매 초반엔 반응이 미온적이었다. 그러던 중 연예인들이 입은 모습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2017년 12월 12일 하루 동안 5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39만 원짜리 레스터는 전국 어느 매장에서도 블랙과 네이비를 구할 수 없었다. 기다리겠다는 사람만 7만 8천 명이었다. 1990년대 떡볶이 코트, 2007년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을 이어 롱패딩이 새로운 신종 등골브레이커로 불렸다.
K패션의 독특한 현상
롱패딩 유행은 한국만의 현상이었다. 해외에서는 항상 숏패딩이 대세였다. 인스타그램을 봐도 외국에서는 운동선수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은 일본에서는 롱패딩만 입고 있으면 한국어 메뉴판을 줄 정도였다. K팝 아이돌의 롱패딩 차림을 보고 외국인들이 신기해했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교복 위에 롱패딩을 입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롱패딩 가격대와 브랜드로 서열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 커뮤니티에는 친구들 모두 입는데 나만 없다며 30만 원대 롱패딩을 사달라고 조르는 딸 때문에 고민이라는 학부모 글이 올라왔다. 학원비에 과외비로 빠듯한데 롱패딩까지 사줘야 하나 고민이었다.

지금 사기 전 꼭 알아야 할 것
롱패딩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충전재다. 거위털인 구스다운과 오리털인 덕다운이 있다. 거위털은 오리털보다 크고 부드러우며 구조도 복잡하다. 거위가 오리보다 몸집이 커서 깃털도 크다. 큰 깃털은 더 많은 공기층을 만들어 보온성이 좋다. 거위털은 탄력 있고 복원력이 뛰어나 오래 입어도 형태가 유지된다. 결론적으로 거위털은 더 가볍고 따뜻하지만 비싸고, 오리털은 가성비가 좋다. 필파워는 충전재 1온스를 눌렀다 폈을 때 부풀어 오르는 부피를 측정한 값이다. 충전재의 복원력을 나타낸다. 필파워가 높을수록 같은 양으로도 더 많은 공기를 가둬 보온성이 좋다. 필파워 700 이상이면 좋은 제품이다. 충전재 함량은 솜털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90대 10이면 솜털 90퍼센트 깃털 10퍼센트다. 솜털 비율이 높아야 공기층을 형성해 보온성을 극대화한다.

생존을 넘어 패션이 되다
생존을 위한 유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롱패딩은 따뜻하다. 2018년에는 롱패딩 모양을 놓고 온라인 쇼핑몰들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법원은 흔한 디자인이며 일반화되어 있어 제품 고유의 특색이 없다면 표절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롱패딩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공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북극 이누이트족의 생존 파카에서 시작해 축구 벤치의 실용 의류를 거쳐 2018 평창 올림픽의 상징이 된 롱패딩. 그리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K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겨울 거리를 걷다 보면 여전히 수많은 롱패딩을 볼 수 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추위 속에서 발명된 패딩의 역사가 이렇게 이어진다. 축구 벤치에서 K패션까지, 롱패딩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